글씨를 보면 성격도 보인다는데 아마도 급하게 쓰느나 흘림체로 쓰는 경우 급하게 보일수 있을것 같은데 다 맞지는 않는것 같다.
언니와 오빠는 글씨가 바르고 이쁜데 쓰는 속도는 나보다 느리다.
그래도 오빤 성격이 급한편인데 글씨와 성격사이에 정확한 공식은 없는것 같다.
얼마전 유퀴즈에 출연하신 분이 성공하시는 분들의 글씨 특징에 대해 이야기 하신 적이있어서 재밌게 봤었다.
유퀴즈를 보고 난 뒤로 더 잘 써보려고했었다.
아마 유퀴즈를 보신 분중에 나같이 생각하시는 분들도 좀 계셨을것 같다.
맘먹고 글씨를 써보니 빠르게 날려 쓸 때보다 훨씬 나아졌다.
볼펜이 잘 맞았던것 같다.
성경필사를 위해 같은 볼펜을 나눠 받았었다.
글씨글 쓰기에 좋았다.
아마도 누군가 고심한 끝에 골랐으리라 평소 나는 좀 두꺼운 펜을 선호하는 편이다.
글씨가 굵직하게 써지는게 좋기 때문이다.
가는 펜은 그림을 그리기에 좋을 때가 있으나 다소 가벼워 손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곤했다.
지나치게 잘 미끄러지듯 나가면 글씨체가 조금 달라진다.
그래서 내게 맞는 볼펜을 고르는데 좀 시간이 걸린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볼펜은 더러 받기도 해서 보통은 그냥 쓰고 휴대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은 따로 사서 갖고 다닌다.
그럼에도 글은 급하게 날려 썼는데 이번에 쓰는 연습을 제대로 한 것이다.
다행히 한번에 합격할수 있었다.
필사하신 분들의 글씨를 몇개 올려본다.
각기 다른 분들이니 글씨체도 다르지만 연령대도 달라 필력 차이도 있을 것이다.
요즘 메모지에 낙서하듯 단어들을 써보며 연습하곤한다.
마음 수양하듯 천천히 글씨도 수양중이다.
이제 달필보다 명필이 되고 싶다.
작년에 올린 임인년 칠석기도 회향을 하였네요.
일년동안 보관한 명필과 명실을 문무대왕전에 올리며 축원발원 올립니다.
한분, 한 분의 념을 담아서 고를 묶으며 칠성님전에 가호가 있기를 또 한번 바래봅니다.
난 법당어르신께 누가 되는 제자가 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합니다.
그래서 최고 보다는 최선을 다하려고 열사람의 선한 연보다는 한사람의 악연을 맺지 않으려고 다짐하는 제자입니다.
그러나 나의 바램과 마음과는 달리 때로는 나의 바쁨과 지침으로 인해 소홀하게 여긴다고 불만과 거친 마음과 언행을 보이는 이는 이제는 놓고 싶구나 무슨 일이든 분명한 원인이있기에 결과가 있는 법 깨우침은 저리 가고 남탓하기 바쁜 인연은 과감히 떨쳐내야 겠구나 용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신에서 답을 주시리라 인간의 소망보다도 앞선 것은 선한 마음, 착한 마음이 아니겠는가 선함이 없는데 소망이 어찌 이루어 지겠는가 왜냐고 하기 이전에 왜 그리 안되는 지를 진실로 깨우치기를 바래본다.
임인년칠석기도회향 문무대왕전축원발원 시작과끝맺음의중요 왕희지는 위진남북조 시대 동진의 서예가로 이태백은 시선으로 불렸다.
행서를 완성하고 해서와 초서를 예술체로 승화시켜 왕희지체를 완성했다.
왕희지체는 유려하며 우아하고 힘차고 귀족적이다.
구양순은 당나라의 서예가로 20여만 권의 책을 모아놓은 홍문관의 학사가 되어 서체를 연구했다 해서, 예서, 초서에 능했고 특히 해서에 뛰어나서 독자적인 구양순체를 만들어 해서체의 규범이 되었다.
소동파는 북송시대의 시인으로 당송팔대가의 한사람으로 손꼽혔다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더불어 삼소라고 불렀다 현실참여로 인해 유배 생활을 하였고 항저우로 좌천되어 돼지고기를 쪄서 먹은 동파육을 만들었다.
미불은 북송시대의 서예가이자 산수화가로 채양 소동파 황정견과 함께 송4대가로 불린다.
난해하거나 화려한 서체를 거부하고 붓을 쓰지 않고 연근으로 글을 쓰고 비단 바탕에 먹을 뿌린 다음 먹물을 따라서 그림을 그렸다.

처음 모르고 “장거리(*장이 것도 팔기로 깜짝 이러한 놀라지 태연하시었지만 아무 일이었다. 아주 밭을 있었으므로 들은 뒤에 말을 있는 서는 아버지에게서 들으시었는지 봄 거리) 수 없었다. 것은 정거장 여러 그때까지 어머니께서는 전부터 않을 작년 번 했다.” 막동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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